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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로마에 태어났다면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8-31 17: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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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으로 산 황금만능의 리더십 : 크라수스 (16-完)

이명박 전 대통령(사진)이 정치인 시절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된 것처럼 카르헤 전투를 치르며 크라수스는 부하들의 믿음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카시우스는 낌새가 이상함을 눈치 채고는 도중에 카르라이로 되돌아갔다. 그는 길안내를 계속 맡겠다는 아랍인들의 제의를 뿌리치고는 5백 명의 기병들과 함께 시리아를 향해 말을 몰았다. 카시우스는 하늘에 뜬 달의 위치가 전갈자리에 도달할 때까지는 출발하지 말라고 조언하는 아랍인들에게 “나는 전갈자리가 아닌 궁수자리가 두렵소”라는 의미심장한 대답을 남기고 떠났다.

 

촉이 빠른 카시우스였다. 아랍인들이 로마인들을 파르티아 궁수부대의 아가리 속으로 유인하고 있음을 알아챈 것이다. 카시우스가 아랍인들에게 별다른 해코지를 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는 아슬아슬하게 탈출행렬의 막차를 탄 것이 분명하다. 교활한 아랍인 세작들을 응징할 시간여유조차 없었다는 뜻이다.

 

날이 밝고서야 크라수스는 안드로마코스가 쳐놓은 함정에 빠졌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크라수스 휘하의 병력은 2천 명의 보병과 수십 기의 기병이 전부였다. 수행원은 겨우 다섯이었다.

 

옥타비우스는 5천 명 정도의 보병을 거느리고서 크라수스로부터 2km 가량 떨어진 위치에 자리해 있었다. 크라수스가 파르티아군에게 포위된 광경을 목격한 옥타비우스는 덫에 빠진 집정관을 구하고자 적군에게 무작정 돌격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옥타비우스의 부하들 역시 방패를 이어붙이고 적진으로 달려들었다.

 

수레나는 로마군의 예상 밖의 격렬한 저항에 당황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죽기살기로 덤벼들 듯이 이판사판으로 맞서는 로마군으로 말미암아 파르티아 측의 손실 또한 컸다. 더욱이 파르티아군은 전통적으로 야간전투에서 취약성을 노출해온 터였다. 로마군이 야음을 틈타 탈출을 시도한다면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도리밖에 없었다.

 

수레나는 기병과 나란히 파르티아의 양대 무기인 심리전에 즉각 착수했다. 그는 포로로 붙잡은 로마군을 상대로 파르티아 병사들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지능적 책략을 구사했다. 군사들로 하여금 포로들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파르티아 국왕이 로마와의 휴전을 원하고 있다고 떠들게 한 다음, 사로잡은 로마군 병사들을 일부러 석방한 것이다. 감금에서 해제된 포르들은 어차피 머잖아 살해당하거나 또는 다시금 생포될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로마 장병들은 적진에서 돌아온 동료 병사들의 입을 통해 전파된 파르티아의 가짜 뉴스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결정타는 수레나가 날렸다. 그는 직접 로마군 앞에 나타나 활시위를 푼 후에 정중한 사과와 더불어 크라수스를 비롯한 생존한 로마군 전체가 안전하게 모국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배려하겠다고 신변보장을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크라수스는 병사들에게 적군의 기만책에 현혹되지 말라고 간절히 호소했지만 당장 자기부터가 적군의 속임수에 벌써 몇 차례나 넘어간 터라 부하들의 믿음을 얻을 수가 없었다. 이즈음 크라수스의 말은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라는 MB라는 의혹 제기에 대해 “이게 다 거짓말인 건 아시죠?”라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했을 무렵만큼이나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크라수스가 병사들의 집단항명에 등 떠밀려 파르티아와의 평화협상에 마지못해 나서기에 앞서서 마지막으로 진중에 남긴 당부는 그의 유언처럼 돼버렸다.


“제군들은 고향땅에 무사히 도착하면 동포들에게 부디 전해주게나. 나 크라수스가 죽은 이유는 적군의 꼬임에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아군에게 배신당한 탓은 아니었노라고.”

 

집정관이 비장한 유지로도 들릴 수 있고, 뒤끝 작렬하는 한마디로도 해석될 수 있는 묘한 언급을 남기고 파르티아 측이 지정한 장소로 향하자 옥타비우스는 뭔가 불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크라수스를 곧장 뒤따랐다. 크라수스는 그를 따라온 수행원들을 로마군 진영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어리석은 대장을 만나 실컷 고생만 해온 애꿎은 부하들을 저승길의 동반자로까지 삼고 싶지는 않았다.

 

크라수스가 빈약하게 무장한 소수의 수행원들만 데리고 왔음을 확인한 수레나는 그제야 마각을 드러냈다. 그는 파르티아와 로마 사이의 화평교섭이 시작된 사실을 문서로 공식화하려면 유프라테스 강가까지 가야 한다며 크라수스를 파르티아 마부가 타고 온 말 위로 반강제로 끌어올렸다. 크라수스는 이곳까지 도보로 걸어왔던 것이다.

 

파르티아 마부가 채찍질한 말이 속도를 내려는 찰나 옥타비우스와 페트로니우스가 말고삐를 잡으며 마부를 제지했다. 페트로니우스는 병사들의 복리를 돌보고 소원을 수리하는 군단의 호민관이었다. 양측 협상단의 몸싸움은 곧바로 칼싸움으로 비화되어 옥타비우스는 파르티아 마부를 죽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자신도 적병의 칼날에 쓰러졌다. 비무장이었던 페트로니우스는 말에서 뛰어내려 허겁지겁 도망쳤다.

 

플루타르코스는 확실한 사실은 크라수스가 죽었다는 사실일 뿐이지, 누가 그를 죽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크라수스를 수행한 로마인들은 거의 전원이 현장에서 죽임을 당했고, 파르티아인들은 이때의 사건에 관한 구체적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탓이다.


크라수스를 적진으로 윽박질러 보낸 로마군 장졸들의 운명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투항해 비참한 포로 신세가 되거나, 혹은 탈주를 시도하다가 불귀의 객이 된 자가 대다수였다. 무사히 로마로 돌아간 이들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플루타르코스는 파르티아 원정에 참여한 로마군 가운데 2만 2천 명이 사망하고, 2만 명이 전쟁포로가 됐다고 기록하였다. 칸나에 전투 이래 로마가 겪은 가장 규모가 크고 치욕스러운 패배였다.

 

플루타르코스는 두 가지 일화를 후세에 굳이 전하려 들지 않았다. 첫 번째는 파르티아 사람들이 부유함으로 유명했던 로마 집정관의 목구멍에 황금을 녹인 뜨거운 액체를 부어 크라수스를 죽였다는 거였다. 전장의 급박한 상황을 겪기는 파르티아도 매한가지였다. 파르티아 입장에서 크라수스가 아무리 미웠다고 한들 느긋하게 금까지 녹이며 적장을 조롱할 시간은 없었으리라.

 

두 번째는, 카르헤 전투에서 포로가 되어 파르티아로 끌려간 로마군의 일부가 나중에 중국의 한나라까지 흘러들어가 집성촌을 이뤘다는 것이다. 포로를 자국의 군대에 편입시켜 전장에 투입하는 행동은 인류사의 오래된 관습이었다. 엽기적인 첫 번째 후일담에 견주면 비교적 신빙성 있는 사연이리라.

 

플루타르코스는 필자가 방금 소개한 두 가지 모두 가짜 뉴스로 취급해 그의 「영웅전」에 수록하지 않았다. 가짜 뉴스 따위에 혹하는 어리석은 무리는 카르헤 전투에 종군한 로마인들로 이미 차고도 넘친다는 게 플루타르코스의 매서운 필법이자 냉철한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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