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파르티아의 젊은 피, 로마의 구태를 꺾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08-14 18:11:34

기사수정
  • 돈으로 산 황금만능의 리더십 : 크라수스 (12)

파르티아의 청년 장군 수레나는 말 타는 데 능한 흉노족의 후예로 추측되는 사니이었다. (사진출처 : 구글)크라수스는 큰소리는 빵빵 쳐놨지만 내심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파르티아군의 강력한 기마부대에 맞설 만한 뾰족한 대응수단이 그가 거느린 로마군에는 부재했던 탓이다. 이때 로마의 전통적 동맹국이었던 아르메니아 왕국의 아르타바제스 왕이 6천 명의 정예 기병대를 대동하고 크라수스 진영에 합류했다. 아르타바제스는 1만 명의 기병과 3만 병의 보병을 아르메니아의 비용 부담 하에 로마에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여기에는 한 가지 단서가 달렸다. 크라수스의 로마군이 아르메니아의 영토를 가로질러 파르티아로 진격해 달라는 전제조건이었다. 아르메니아를 거쳐 파르티아로 향하는 길은 산악지형으로 이뤄진 터라 파르티아 기병대의 장점인 기동력과 돌파력을 로마 입장에서는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킬 수가 있었다.

 

크라수스는 아르메니아의 영토를 횡단할 경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주둔한 로마군과의 연결이 곤란해질 수가 있다는 이유로 아르타바제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로마군이 탁 트인 사막으로 나아가면 파르티아에게 백 프로 참패할 것이라 예견한 아르타바제스는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군사들을 거둬 본국으로 돌아갔다.

 

크라수스는 제우그마에서 유프라테스 강을 건넜다. 그의 군대는 도강 과정에서 여러 불길한 조짐들과 맞닥뜨렸다. 갑자기 천둥번개가 내리치면서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급격히 불어난 까닭에 후세에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고위 장교 한 명이 말과 함께 익사한 사건이 대표적 악재였다. 허나 행운을 예고하는 일들도 분명 비슷한 정도와 횟수로 나타났을 테고, 크라수스의 패배에만 주목한 사가들은 이와 관련된 기록은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크라수스에게 조막간 닥칠 파국적 재앙은 본질적으로 인재(人災)였던 셈이다.

 

도하를 완료한 크라수스의 진중에는 6개 군단 규모의 중장보병과 4천 명에 달하는 기병이 있었다. 기병과 비슷한 숫자의 경무장 보병도 대열을 따라왔다. 정찰에 나선 수색대는 파르티아의 전초부대가 남긴 걸로 추정되는 무수한 말발굽 자국이 강가에 찍혀 있다고 보고했다. 크라수스는 파르티아인들이 로마인들을 피해 도망간 게 분명하다며 한껏 기고만장해졌다. 그러자 병사들 또한 긴장감이 해이해져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들떴다.

 

참모인 카시우스는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견지했다. 그는 파르티아의 대병력이 함정을 파고서 로마군을 기다리고 있을 게 틀림없다고 우려하면서 유프라테스 강변을 따라서 셀레우키아로 안전하게 행군하자고 건의했다. 이와 같은 경로를 택하면 물과 식량을 포함한 각종 군수물자의 보급이 용이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크라수스는 카시우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며 군대의 진로를 어떻게 재조정할지를 놓고 숙고에 잠겼다.

 

파르티아는 위력적 기병대만 보유한 게 아니었다. 유능한 첩보부대도 운용하고 있었다. 아리비아의 어느 부족장인 아리암네스는 파르티아 궁정이 침투시킨 이중첩자였다. 과거 폼페이우스 밑에서 복무했다는 경력을 내세워 크라수스의 신임을 획득한 아리암네스는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탁 트인 평야지대를 통해 파르티아로 곧장 쳐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로마군 총사령관의 귀에 연신 속삭였다. 그는 파르티아의 군주가 나라의 모든 병력을 동원하기 전에 로마군의 장기인 속도전를 활용해 전쟁을 승리로 끝내야 한다고 크라수스를 꼬드겼다.

 

실상은 아리암네스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파르티아 국왕 피로데스는 이미 완벽한 임전태세를 갖춘 후였다. 그는 군대를 둘로 나눠 자신이 직접 지휘하는 장병들로는 아르메니아를 유린했다. 로마 편에 선 아르타바제스가 파르티아를 측면에서 공격할 위험성을 사전에 제거하려는 치밀한 포석이었다.

 

파르티아 군대의 주력은 수레나가 이끌었다. 그의 외모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존하는 고대의 조각상들을 살펴보면 수레나의 혈통이 동양계임을 단숨에 눈치 챌 수가 있다. 당시의 세계정세는 흉노족이 중국의 두 번째 통일왕조인 한나라의 지속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으로 차츰차음 이동해가는 상황이었다. 수레나는 사납고 난폭한 유목민족의 대명사인 흉노의 피가 흐르는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플루타르코스는 피로데스가 파르티아의 왕좌에서 밀려나자 수레나가 그를 무력으로 왕위에 복귀시켰다고 서술하였다. 명문가의 자손인 데다 임금의 최측근이었으니 그 권세가 실로 어마무시하게 막강했으리라. 수레나는 가족과 가신, 그리고 사병(私兵)과 노예들까지 더해 최소한 1만 명 이상의 무리를 수하에 두었다고 전해진다. 수레나가 대부족의 수장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1만이 넘는 집단의 고갱이는 기마술에 능하고 궁술에 뛰어난 유목민 전사들이었으리라.

 

게다가 수레나는 아직 서른 살이 채 되지 않은 열혈 청년 장군이었다. 장시간의 쉴 새 없는 강행군에 수반되기 마련일 피로로 녹초가 된 나머지 병사들 앞에서 심각한 말실수까지 저질렀던 저질체력의 크라수스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절륜한 강철체력의 소유자가 다름 아닌 수레나였다. 그러므로 크라수스는 범의 아가리 속으로 자기 머리를 스스로 무모하게 들이민 격이었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폭염 속 `군포 얼음땡` 인기 폭발 군포시가 폭염 대응을 위해 시범 운영 중인 AI 무인 냉장고 `군포 얼음땡`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시는 7월 하순부터 중앙공원, 로데오거리, 당정근린공원 등 시민 유동 인구가 많은 3개소에 `군포 얼음땡` 냉장고를 설치해 냉각 생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운영 초기부터 하루 평균 1,200병 중 90% 이상이 소진되는 등 예상보...
  2. 광복 80주년…정부, 83만여 명 특별사면·행정제재 감면 이재명 정부가 제80주년 광복절을 맞아 오는 15일자로 총 83만6,687명에 대한 특별사면과 행정제재 감면을 단행하고, 약 324만 명에 달하는 서민·소상공인에 대한 신용회복 지원조치도 시행한다.정부는 11일 ‘국민주권정부’ 출범 후 첫 특별사면을 발표하며 국민통합과 민생 회복을 핵심 목표로 제80주년 광복절 특별사면을 단행한.
  3. 청년의 눈으로 통상을 보다…대학생 통상정책 토론대회 참가 모집 산업통상자원부가 오는 9월 12일까지 ‘2025년 대학생 통상정책 토론대회’ 참가 신청을 받는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이번 대회는 통상정책에 대한 청년층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고, 국제통상 분야의 미래 인재를 발굴·육성하기 위해 마련됐다.참가 대상은 국내 대학 재학생과 휴학생(외국인 포함)으로, 1명 이상 5명 이하 팀을 구성...
  4. `K-브랜드, 날개를 펼치다` 남동구, 카자흐스탄 시장개척단 파견 박종효 인천 남동구청장이 지역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하기 위해 11일 출장길에 올랐다.남동구는 8월 11∼14일까지 나흘간의 일정으로 인천상공회의소와 함께 카자흐스탄 알마티 해외시장개척단을 파견한다고 밝혔다.박 구청장이 이끄는 시장개척단은 와더스킨, ㈜나노메딕스 등 관내 중소기업 15개 사가 참여하며, 화장품과 여.
  5. 폴리텍대학, 현장 맞춤형 안전보건교육 확대…“안전한 캠퍼스 만든다” 한국폴리텍대학이 온라인 위주의 안전보건교육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찾아가는 안전보건교육’을 본격 시행한다.이번 교육은 시설관리, 급식 조리, 환경미화, 경비 등 캠퍼스 현장에서 근무하는 교직원을 대상으로, 실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사례와 예방 대책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교육 참석자에게는 쿨링패.
  6. 광명119안전센터, 12일부터 ‘광북119안전센터’로 명칭 변경 광명소방서가 오는 12일부터 기존 ‘광명119안전센터’의 명칭을 ‘광북119안전센터’로 변경한다.광명소방서는 이번 명칭 변경이 ‘광명소방서’와 ‘광명119안전센터’의 이름이 비슷해 발생할 수 있는 혼선을 줄이고, 주민들이 보다 쉽게 센터를 구분하도록 하기 위해 추진됐다고 설명했다.광북119안전센터의 관할...
  7.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 보상사업지구 내 취약 계층에 폭염 대비 물품 전달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사장 황상하)는 용산국제업무지구 등 보상사업지구 내 취약 계층 주민들을 위해 폭염 대비 물품을 전달했다고 11일 밝혔다.이번 물품 지원은 폭염에 특히 취약한 천막, 텐트 등 임시 거주 시설에 살고 있는 주민을 위한 것으로, SH는 시립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와 협력해 용산역 인근 텐트촌 노숙인들에게 쿨 매트, ..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