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개인숭배의 종착점은 도편추방이었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1-02-12 20:25:21

기사수정
  • 전략과 용단의 리더십 : 테미스토클레스 (9)

페르시아 전쟁에 참전한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들은 신성동맹 회의를 개최해 전후처리 문제를 논의했다. 스파르타는 침략자와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나라들을 동맹에서 전부 제외시킬 것을 주장했다. 스파르타가 제시한 방안이 회의에서 관철될 경우 테살리아, 아르고스, 테베 등은 동맹으로부터 배제될 게 명백했다. 세 나라 모두 아테네에 우호적인 국가들이었고, 이들이 신성동맹 가입을 거부당하면 아테네는 동맹 내에서 소수파의 지위로 내몰릴 것이 뻔한 지라 테미스토클레스는 스파르타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도편추방의 본래 목적은 스탈린 같은 폭압적 참주의 출현을 미연에 막는 거였다. (이미지출처 : 구글)

통틀어 31개 나라들이 당대의 세계 최강국인 페르시아 제국에 대항하는 연합군에 가담해 피를 흘린 터였다. 대부분 자그마한 도시국가들이었는데, 이들 역시 스파르타가 전후 질서와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일을 바라지 않았다.

 

스파르타는 자연스럽게 고립되었고, 외톨이가 된 군국주의의 호전적 모국은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이를 갈았다. 라케다이몬인들은 테미스토클레스의 또 다른 정적인 키몬을 후원하는 방법을 통해 반격을 시작했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내부 분란을 부추김으로써 테미스토클레스의 입지를 흔들려 시도했다.

 

아테네와는 천적관계에 놓인 스파르타만이 테미스토클레스를 미워한 건 아니었다. 아테네의 공식적 동맹국들 가운데에서도 테미스토클레스라면 치를 떠는 나라들이 있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동맹국들을 상대로 빈번히 돈을 뜯어냈다. 여기에는 본인의 배를 불리려는 사적인 목적도 개입됐겠지만, 전후의 복구자금이 한 푼이라도 아쉬운 아테네의 국고를 채우려는 공적 동기도 분명 작용했으리라.

 

현대 미국의 조야는 그리스와 로마가 쌍끌이하는 고대 서양사를 쉬지 않고 되새김질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므로 필자는 미국이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독일 등의 주요 동맹국들로부터 받아내는 방위비 분담금의 원형이 테미스토클레스가 아테네의 우방국들로부터 수금한 돈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오고 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섬나라인 안드로스에 가서는 돈을 내놓으라고 독촉하면서 그가 두 분의 신을 모시고 이곳을 찾아왔다고 능청스럽게 지껄였다. 그가 모시고 왔다는 거룩한 신들의 이름은 ‘설득’과 ‘강요’였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건자 그람시의 어법을 잠시 인용한다면 전자는 동의이고 후자는 강제였다.

 

그람시는 동의와 강제의 적절한 배합이 지속가능한 헤게모니(Hegemony)를 창출함을 통찰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람시가 헤게모니 개념을 창안하기 무려 2천 4백 년 전에 권력의 강약조절에 관해서라면 이미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던 셈이다.

 

그렇지만 안드로스 사람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빈곤’과 ‘무기력’이라는 신들을 오래전부터 섬겨왔다고 대꾸하며 돈을 순순히 내어줄 의사가 없음을 완곡하면서도 재치 있게 표시했다. 플루타르코스가 테미스토클레스와 안드로스 사이의 논쟁과 관련해 더 이상의 상세한 기록을 남기지 않은 사실로 보아 테미스토클레스가 구태여 커다란 물의를 빚으면서까지 안드로스 섬에서 무리하게 돈을 갈취하지는 않았던 성싶다.

 

반면에 로도스는 테미스토클레스를 겨냥한 뒤끝을 끝까지 작렬시켰다. 로도스의 서정시인 티모크레온은 테미스토클레스를 저격하는 내용이 담긴 시까지 직접 지어가며 그에게 신랄한 야유를 퍼부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고난의 행군을 하던 시절에 티모크레온이 그를 성심성의껏 보살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저 악명 높은 아테네의 권세가 겸 수완가가 배은망덕하게도 단지 돈 때문에 과거의 은인을 매정하게 외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구체적 사연은 이랬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뇌물을 받는 대가로 사면을 남발했는데, 페르시아에 동조한다는 혐의로 아테네에서 축출된 티모크레온이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추방령의 철회를 개인적으로 간곡하게 부탁하자 그의 옛 후원자에게조차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테미스토클레스 자신이 아테네에서 쫓겨나는 불우한 신세로 전락하자 티모크레온은 그를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풍자시를 발표해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앙갚음을 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연일 직격탄을 날리는 사태에서 선명하게 목격되듯이, 나이 많은 남자가 일단 한번 빈정이 상해 마음이 토라지면 여간해서는 노여움을 거두지 못하는 법이다.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을 대영제국의 승리로 이끌고도 총선에서 오히려 패배해 총리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쓸쓸하게 이삿짐을 싸야만 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처칠과 견주면 상황이 몇 십 배는 더 나빴다. 그는 도편추방의 희생양이 되어 아예 조국에서 퇴출된 탓이었다.

 

도편추방은 참주로 타락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인민을 압제할 위험성이 있는 인물들을 사전에 제거하는 아테네 고유의 제도적 장치였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미국의 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인공지능(AI)과 빅 데이터가 상시적으로 활용될 미래세계에서는 잠재적 범죄자를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선제적으로 미연에 검거할 것이라는 개연성 짙은 예측과 전망에 근거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완벽하고 무오류로 보이는 이러한 과학적 범죄예방 시스템에서도 치명적 오류가 생겨난다. 도편추방은 사악한 선동가와 변덕스러운 대중이 결합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그로 말미암아 생사람 잡는 일이 비일비재로 벌어지곤 했다. 권모술수의 대가였던 테미스토클레스는 도편추방의 구조적 맹점을 지능적으로 악용해 아리스테이데스를 숙청한 바 있었다. 도편추방으로 흥한 자 도편추방으로 망한다고, 이제는 테미스토클레스 스스로가 억울하게 거세당할 차례였다.


아리스테이데스와 달리 테미스토클레스에게는 도편추방의 비운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대중이 그에게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에 그는 영리하게 잠시 2선으로 물러나는 노련한 처세술을 발휘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테미스토클레스는 정치적인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민들 앞에서 되레 큰소리로 호통을 쳐대는 어이없는 만용을 부렸다.

 

결정타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건립이었다. 여신을 경배하는 신전이 완공되자 테미스토클레스는 해당 건축물에 그리스어로 아리스토불레, 곧 ‘최고 조언자’라는 별칭을 스스럼없이 붙였다. 하필이면 자기 집 근처에 신전을 축조한 까닭에 누가 봐도 신전은 아르테미스가 아닌 테미스토클레스에게 봉헌된 모양새였고, 따라서 그의 진정한 의도가 뭐였건 간에 테미스토클레스는 동포들에게 그를 신격화하는 개인숭배를 결과적으로 강요하고 말았다.


21세기 한반도에서는 남북한을 막론하고 최고 통치자를 향한 개인숭배 행태가 별다른 부끄러움 없이 심지어 지식인들에 의해서마저 수시로 자행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고대 아테네에서는 최고 권력자를 최고존엄으로 미화하거나, 또는 꽃길만 걷게 해주겠다며 현직 대통령 옆에서 낯간지러운 가르랑말을 속삭이는 비루하고 추잡한 아부와 아첨의 향연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르테미스 신전에는 플루타르코스가 그의 「영웅전」을 집필하던 당시까지도 위풍당당한 풍채의 테미스토클레스의 흉상이 온전히 건재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흉상은 흉상일 뿐, 그 앞에서 어느 누구도 흉상에 절을 하거나 허리를 숙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백원국 국토2차관,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13일부터 본격 가동” 백원국 국토교통부 2차관은 5월 7일(화) 오후 4시 30분,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대회의실(부산 강서구)에서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설립위원회 6차 회의를 주재하였다.설립위원회는 작년 11월 1차 회의를 시작으로 5차례 회의를 통해 건설공단의 조직 체계와 정원, 보수 및 임직원 채용 등 중요한 사항을 결정해왔다. 이번 6차 회의는 설립위원회.
  2. 간협, 총선 및 재·보선 간호사 당선자 축하연 개최 지난 4월 10일 치러진 22대 총선 및 재·보선을 통해 당선의 영예를 안은 간호사들을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대한간호협회(회장 탁영란)는 7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 에메랄드룸에서 ‘2024년 총선 및 재·보선 간호계 당선자 축하연’을 개최했다.이번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이수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과 ..
  3. 계약시 관리비 세부내역 표기하도록 상가건물임대차표준계약서 양식 개선 법무부와 국토교통부는 상가 관리비 투명화와 임차인의 알 권리 제고를 위해 상가건물임대차표준계약서 양식을 개선했다고 밝혔다.개선된 표준계약서 양식에 따르면 상가건물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때 월 10만 원 이상 정액관리비의 주요 비목별 부과 내역을 세분화하여 표시하여야 하며, 정액이 아닌 경우는 관리비 항목과 산정방식을 명..
  4. 동작 미래 이끌 노량진 60층 랜드마크 청사진 마련한다 동작구가 노량진역 일대에 최고 60층 높이 랜드마크를 조성하는 도시 발전의 청사진을 마련하고자 ‘노량진역 일대 지역 활성화 용역’을 이달부터 올해 연말까지 추진한다.노량진 일대는 향후 10년 이내에 노량진뉴타운 완성을 통해 새롭게 탈바꿈되며, 수협 및 수도자재부지 개발, 국가철도 지하화 추진 등 획기적인 공간변화를 앞..
  5. 삼성 에어컨, 성수기 맞아 고객 편의성 위한 역량 강화 삼성전자·삼성전자판매·삼성전자로지텍·삼성전자서비스가 여름 에어컨 성수기를 맞아 판매·배송·서비스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고객 편의성을 위한 역량 강화에 나섰다.삼성스토어에서는 시스템(천정형)∙홈멀티(스탠드형/벽걸이형)∙창문형 에어컨 등 다양한 유형의 무풍에어컨을 설명할 수 있는 전문 매니저를 ...
  6. 조용익 부천시장, 1일 ‘송내2동장’으로 활약…현장 목소리에 집중 조용익 부천시장은 지난 3일 소사구 송내2동 행정복지센터에서 ‘1일 송내2동장’으로 근무하며 주민과 다양한 활동을 체험하는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 이날 송내2동장으로 변신한 조 시장은 청사를 방문한 민원인을 반기며 주민편의 원스톱서비스 등 민원 업무를 안내하고 지역 어르신의 주민등록증 사진을 직접 촬영했다. 이어 송내...
  7. 우리은행, 우리WON뱅킹 실험실에서 AI 서비스 미리 경험한다 우리은행(은행장 조병규)이 우리WON뱅킹 ‘AI 챗봇’에서 새로운 AI 서비스를 미리 경험할 수 있는 ‘실험실’을 도입한다. ‘실험실’은 AI 서비스를 정식 도입하기 전에 사용자가 먼저 경험하고 검증하는 환경이다. 이를 통해 사용자가 원하는 고도화된 AI 서비스를 개발하고 급변하는 기술에 민첩하게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다. 우리은행은 ...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