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자수첩] ‘어린 여성’들이 느끼는 부조리와 무례에 대해 고민하라
  • 서진솔 기자
  • 등록 2020-12-11 14:31:29

기사수정

낙태죄 폐지 문제가 젠더 갈등 한복판에 등장했다.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낙태죄’ 개정 관련 공청회가 그 시작이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에게 "남성도 여기(낙태죄)에 대해 심각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문제"라며, "20~30대 남성들이 이 법안(낙태죄 전면 폐지)을 바라보는 평가, 낙태죄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인식 등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김 의원이 품은 뜻을 의심하거나 반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다. 현 낙태죄에서 남성들의 책임은 완전히 배제돼 있고, 개정안이 통과돼 폐지되더라도 남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다. 성별을 구분해서 의견을 물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공적 자리에서 성을 기준으로 나눈 의견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렇게 낙태죄는 젠더 이슈가 됐다.

 

더 중요한 논쟁은 그다음부터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공청회 직후 논평을 내고 "‘낙태죄 폐지에 대한 여성들의 반대의견은 잘 알겠으나 남성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등 어이없는 말들을 일삼고 여성들의 삶을 짓밟았던 공청회에서의 망언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다음날인 9일  브리핑을 통해 김남국 의원이 8일 저녁 조 대변인에게 직접 연락해 통화로 전날 논평에 대해 항의했다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난데없이 일면식도 없는 타 당 대변인에게 전화해, 다짜고짜 왜곡된 브리핑이라 몰아붙이는 것은 결코 상식적인 행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대변인도 입장문을 내고 “문제의 핵심은 거대 여당 의원이 타 당 대변인에게 협박성 전화를 했고,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가 ‘나이 어린 여성’이자 ‘소수정당의 원외 대변인’이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김 의원은 10일 오전 페이스북에서 “정의당이 ‘30대 어린 여성 대변인’을 강조하는 것이 불편하다”며, “그 무서운 논리라면 저는 ‘남성’이니까 불편함을 느껴서는 안 되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이어 ‘남성 혐오’를 정치에 이용한다고 했다.

 

난데없이 ‘남성 혐오’를 꺼낸 것도 의문이지만, ‘여성’, ‘어린’을 강조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한 부분에서 더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김 의원은 ‘여성한테는 항의 전화 못 하나’라고 말했다. 반대로 일면식도 없는 60대 남성 대변인 어르신께도 전화해 몰아붙일 수 있었을지 되묻고 싶다. 

 

김 의원은 “남성도 공포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는 흔히 남성들이 자신의 입장을 부각해서 성차별적 현실을 호도하기 위해 쓰는 방법 중 하나다. 대한민국 여당의 국회의원이자, 변호사이자, 남성인 그가 느끼는 공포감과 상대방이 느끼는 그것이 같을 수 있는지 또 한번 묻는다. 

 

조 대변인이 ‘나이 어린 여성’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이로 인해 벌어지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기 위해서다. 거대한 권력을 가진 김 의원에게 여성들의 피해 의식과 분노, 두려움을 이해하길 바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소한 그 무감각함을 그들을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해선 안 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여성’, 더 나아가 ‘어린 여성’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부조리와 무례를 감당하고 있다. 남성들이 해야할 일은 여성들이 왜 그렇게 느끼고 말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외는 없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보쉬, 하노버 산업 박람회 2024서 공장 자동화·수소 경제·AI 위한 지속가능한 솔루션 제시 산업 제조업은 모든 경제의 동력이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번영을 보장하며 무역을 통해 성장을 보장한다. 올해 ‘하노버 산업 박람회 2024(Hannover Messe 2024)’에 다시 모인 산업 제조 업체들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공장의 지속가능성과 자원 보존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공동의 주요 도전 과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보쉬는 공...
  2. KB금융, MSCI ESG평가서 2년 연속 최상위 등급 ‘AAA’ 획득 KB금융그룹(회장 양종희)은 26일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이 실시한 ‘2023년 MSCI ESG평가’에서 국내 금융회사 최초로 2년 연속 최상위 등급인 ‘AAA’ 등급을 획득하며, 글로벌 ESG경영 선도기업임을 대외적으로 다시 한번 인정 받았다. 세계적인 투자정보 제공 기관인 MSCI는 매년 전 세계 약 8500개 상장기업...
  3. 신한카드, 2024년 1분기 결제 총 취급액 전년 대비 6.1% 증가한 48조 기록 신한카드의 올해 1분기 결제 취급액이 48조를 넘어서며 연간 200조 달성 가능성을 높였다. 신한카드(사장 문동권)는 2024년 1분기 결제 취급액이 역대 최대인 48조1153억을 달성했다고 26일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6.1% 증가한 수치로 개인/법인의 신용·체크카드 등 일시불/할부를 모두 포함한 국내외 결제의 총 취급액이다. 이와 함께 금융 ...
  4. 인천 동구, 노후·위험 간판 무상 철거 나서 인천 동구(구청장 김찬진)는 오는 5월 7일부터 6월 5일까지 광고주와 건물주의 신청을 받아 노후·위험 간판 무상 철거 사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이번 사업은 깨끗하고 안전한 거리를 조성하고 간판 철거에 대한 광고주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추진된다.무상 철거 대상은 폐업 등의 사유로 주인 없이 오랫동안 방치된 간판과 무...
  5. BC카드, 중기부와 소상공인 매출 증대 위한 ‘동행’ 나서 BC카드(대표이사 사장 최원석)가 중소벤처기업부(장관 오영주, 이하 ‘중기부’)와 함께 소상공인 매출 증대 지원 목적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협약으로 BC카드는 중기부가 주관하고 있는 ‘동행축제’ 기간 동안 전국 전통시장에서 영업 중인 소상공인과 30년 이상 꾸준히 가맹점을 꾸려온 ‘백년가게’의 매출 증대...
  6. 시흥시, 노을이 머무는 시간까지 `오아시스` 연장 운영 시흥시(시장 임병택)는 낙조를 감상하러 오이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일몰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4월 26일부터 8월 말까지 오아시스 개방 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후 9월부터는 일몰 시각에 맞춰 개방 시간이 변경될 전망이다.`오아시스(OASIS_Oido Art Space In Siheung)는 지난 2022년에 오이도에서 함상 전..
  7. 서울과기대 창업지원단, 예창패·초창패 기업 지원 ‘선순환’ 만든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창업지원단(단장 김종선)은 2023년 예비·초기창업 패키지 수혜기업들이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 발전기금 300만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서울과기대 창업지원단이 스타트업의 사업화를 지원하고, 수혜 기업은 다시 학교 측에 기여하는 선순환이 이뤄진 것이다. 서울과기대는 2023년 서울권에서 유일하게 예비창업패키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