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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물을 먹고 자란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1-02-09 19: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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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략과 용단의 리더십 : 테미스토클레스 (8)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살라미스 해전의 최우수 팀으로 아이기나를 선정했다. 최우수 선수(MVP)에는 당연히 테미스토클레스가 뽑혔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리스 연합군 사령관들이 코린토스 지협에 회동해 실시한 인기투표에서도 종합점수 집계결과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가장 용맹하게 싸운 지휘관의 순위를 가리는 이 투표에서 모든 장군들은 1등으로는 자신의 이름을 써낸 다음 2위 자리에 테미스토클레스의 이름을 적었다.


아테네의 영웅들은 공동의 적을 이기고자 공명과 주유처럼 협잡도 불사했다. (영화 「적벽」의 한 장면)

그리스 함대의 명목상의 총사령관으로 복무한 에우리비아데스는 조국인 스파르타로 돌아가 두둑한 포상을 챙겼다. 라케다이몬 사람들은 너무나 기분이 좋았던 나머지 아테네와의 평소의 경쟁관계도 잊고서 테미스토클레스에게 그의 지혜를 칭송하는 상패와 더불어 화려하게 장식된 전차와 3백 명의 청년들을 선물했다. 이들 3백 명의 엄선된 스파르타 젊은이들은 테미스토클레스가 펠로폰네소스 반도 곳곳을 여행하는 동안에 그의 수행원 역할을 맡았다.


테미스토클레스의 명성과 영광은 올림픽 대회에서 정점을 찍었다. 그가 경기장에 들어와 관중석에 착석하자 관중들 전원의 시선은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에게로 일제히 고정됐다. 운동장 안에서 선수들이 펼치는 경기 장면은 뒷전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관중들이 보내는 열렬한 환호와 우레 같은 박수갈채를 그가 기울인 노고와 헌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며 얼굴 가득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굳이 겸손함을 가장하려 들지 않았다. 게다가 허세 또한 심했다. 그는 아테네 해군 총수로 임명되자마자 공식 임기가 시작되는 시점까지 공적이든 사적이든 모든 약속과 일정을 연기시켰다. 그리고 임기가 시작되는 날에 맞춰서 그간 미뤄두었던 업무들을 한꺼번에 전부 처리했다. 부임 첫날이 요란하고 시끌벅적하게 보이도록 연출하려는 계산속의 발로였다.

 

그는 드러내놓고 자기 자랑에 열중하는 인간이었다. 해변으로 밀려온 한 페르시아 귀족의 주검에서 금으로 된 팔찌와 목걸이가 발견되자 그는 뒤따라 걸어오는 동료에게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귀금속을 양보하고는 오만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테미스토클레스가 아니니 가져가도 되네.”

 

당신은 테미스토클레스가 아닌 까닭에 적군 시신에서 금붙이 좀 떼어갔다고 해서 빈축을 사지는 않을 거라는 의미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인들이 자기를 버즘나무 취급하듯이 그들이 아쉬울 경우에만 영악하게 이용한다는 푸념도 공공연히 발설했다. 비가 오면 나무 밑에서 빗줄기를 피하다가, 비가 그치면 나뭇가지를 싹둑 잘라가는 간사한 염량세태를 비꼰 소리였다.

 

어떤 세리포스 사람이 현재 테미스토클레스가 만끽하는 유명세는 순전히 아테네 출신인 덕분에 가능했다며 면박을 주자 그는 그건 맞는 말이라고 일단 맞장구를 쳐준 다음, 그런데 상대방은 고향이 세리포스가 아닌 아테네였어도 듣보잡 신세를 여전히 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통렬하면서도 재치 있게 되받아쳤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전성기 시절에는 그의 가족과 관련된 일화도 인구에 여럿 회자되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 가운데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그의 아들이 아테네의 맹주라는 과장과 오만이 반반씩 뒤섞인 익살을 서슴지 않았다. 아들은 엄마를 지배하고, 아들의 엄마는 남편인 테미스토클레스를 지배하며,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를 지배하고, 아테네는 그리스를 지배한다는 게 그가 내세운 썰렁하고 어쭙잖은 아재 개그였다.

 

그의 딸에게 청혼한 두 명의 구혼자들 중에서 테미스토클레스는 가난한 청년을 사윗감으로 골랐다. 사람 없는 돈보다는, 돈 없는 사람이 낫다는 게 그가 설명한 선택 사유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개인적 성가에 탐닉하는 것으로 무한정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다. 그는 페르시아 군대가 파괴한 도시를 재건하는 데 지체 없이 나섰다. 아테네 부활 작업의 핵심은 무너진 성벽을 더욱더 튼튼하게 쌓는 일이었다. 이러한 공사는 스파르타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불러올 게 뻔했으므로 그는 상당수의 라케다이몬 고관대작들에게 뇌물을 살포해 그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선 직접 스파르타로 가서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불화를 재개할 마음이 전혀 없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스파르타인들에게 아테네를 방문해 현지 사정을 육안으로 확인할 것을 권유했다. 이는 고도의 권모술수였다. 아테네를 찾아온 스파르타 사절단을 아테네 정부 관계자들은 쓸데없는 장소들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성벽을 비롯한 도시의 방비시설을 복구하고 확충시킬 시간을 벌었다. 아테네의 진의를 파악한 스파르타 사절단이 이제 그만 떠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자 아테네는 그들을 곧바로 억류했다. 스파르타에 체류 중인 테미스토클레스의 신변안전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볼모들을 잡아놓은 것이다.


인질교환 방식으로 아테네로 무사히 귀환한 테미스토클레스는 피레우스 항구의 건설에 이내 착수했다. 피레우스는 이후로 아테네가 바다로 편리하고 신속하게 나아갈 수 있는 외항이자 관문 역할을 충실히 해줄 터였다.


테미스토클레스가 발표한 항구 건설 계획에 귀족들은 격렬히 반대했다. 귀족계급의 정치권력과 경제적 기득권은 토지에서 나오는 생산물에 터전을 두고 있었다. 피레우스에 항구가 건설되면 아테네는 내륙국으로부터 완전한 해양국가로 변모할 게 분명했고, 이는 평민들의 발언권은 강화되는 반면에 귀족들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듦을 뜻했다.

 

귀족들의 저항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아테네 사회의 권력의 무게추는 살라미스 해전 당시에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삼단노선의 컴컴한 갑판 아래에서 허기와 갈증과 죽음의 공포를 견뎌내며 힘겹게 노를 저었던 평민들에게 이미 넘어갔기 때문이다.

 

피레우스 항구의 완공을 계기로 아테네는 명실상부한 바다 사나이들의 나라로 발돋움했다. 선장과 조타수와 선원들이 주도하는 민주정체를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의 패전 직후에 전복시키고서 과두체제를 수립한 30명의 참주들이 아테네 시의 중심부 지역인 프닉스에 설치된 대중연설용 연단의 위치를 기존에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내륙을 향하는 쪽으로 바꿔놓은 것은 그러므로 기득권층 입장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참주정치의 지지자들은 흙을 파먹고 사는 농부들이 바닷물에 의지해 생활하는 뱃사람들과 비교해 독재와 권위주의에 훨씬 더 순종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시제를 테미스토클레스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자. 크세르크세스가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 페르시아로 꽁무니를 뺀 후에 그리스 함대의 주력은 아테네 북쪽에 자리한 파가사이 만(Pagasetic Gulf)에 정박해 겨울을 나고 있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이때 동포들 앞에서 폭탄선언을 한다. 그가 조국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그림의 구체적 내용은 오직 아리스테이데스에게만 밝힐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만약 아리스테이데스가 동의한다면 계획의 실행에 즉각 돌입하겠다는 언급도 덧붙였다.

 

아리스테이데스에게 털어놓은 테미스토클레스의 큰 그림이란 파가사이에서 월동 중인 전함들 가운데 아테네 군선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선박들을 분멸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테이데스는 테미스토클레스의 계획을 망설임 없이 대중에게 공개했다. 아테네만 함대를 보유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유익하고 매력적이지만, 그리스 해군력의 절반을 순식간에 폐기한다는 측면에선 치명적으로 위험하다는 게 그가 토로한 표면적 폭로 동기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테미스토클레스와 아리스테이데스 두 정치 고수가 모국인 아테네가 그리스 세계의 다른 폴리스들을 상대로 유리한 협상위치를 선점할 수 있게끔 일부러 짜고 친 고스톱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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