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트로이의 목마’는 없다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0-10-02 18:38:31

기사수정
  • 변신과 적응의 리더십 : 알키비아데스 (11)

알키비아데스는 미래에 콘스탄티노플로 성장할 도시인 비잔티온을 함락시키기 위해 오디세우스의 가짜 출항 책략까지 동원했다. 이미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트로이」의 한 장면.알키비아데스와 트라실로스는 호흡이 척척 잘 맞았다. 그러나 알키비아데스 부하들과 트라실로스 휘하 장병들의 관계는 껄끄럽고 서먹서먹했다. 예전에 에페소스에서 패전한 경험이 있는 트라실로스를 알키비아데스의 병사들이 노골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트라실로스의 명령과 통제를 받는 새로운 동료들과 심지어 식사와 훈련도 같이하지 않으려 했다.

 

두 장군의 군대를 화합시켜준 인물은 페르시아의 장수 파르나바조스였다. 알키비아데스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 허겁지겁 도망쳤던 파르나바조스는 흩어진 병력을 수습한 후 곧장 반격에 착수해 트라실로스의 군대를 곤경에 빠뜨렸다.


알키비아데스는 즉각 구원에 나섰다. 싸움에 능한 파르나바조스도 앞뒤에서 협공하는 알키비아데스와 트라실로스를 동시에 상대하기는 무리인 터라 또다시 패주할 수밖에 없었고, 강대국 페르시아의 내로라하는 장군이 통솔한 군대를 힘을 합쳐 무찌른 사실은 알키비아데스의 병사들과 트라실로스의 장졸들을 단단한 동지애로 묶어주는 접착제 구실을 톡톡히 하였다. 비로소 그들은 명실상부한 원 팀이 되었다.

 

알키비아데스는 믿었던 티사페르네스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이후로 더는 페르시아에 고마움도, 부채의식도 느끼지 않았다. 파르나바조스는 아테네가 하는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며 줄곧 스파르타를 지지해온 자였다. 따라서 그가 다스리는 영지는 아테네군의 우선적 약탈 대상이 되었다.

 

파르나바조스 다음은 아테네를 배신하고 스파르타에 빌붙은 칼케돈 차례였다. 알키비아데스는 칼케돈을 공략하기에 앞서서 비티니아로 향했다. 그곳에는 칼케돈 시민들이 임박한 전란을 피해 보관해놓은 재산과 귀중품이 막대하게 쌓여 있었다. 알키비아데스는 비티니아 주민들로부터 칼케돈인들이 맡긴 값비싼 재물들을 무상으로 양도받았다. 그 대가로 비티니아가 수중에 얻은 건 몇 글자 안 되는 평화조약 문서였다. 그럼에도 비티니아는 아테네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를 피해간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파르나바조스는 페르시아인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그와 그의 군사들은 칼케돈까지 집요하게 따라와 아테네군을 공격했고, 스파르타에서 파견된 지방관 히포크라테스가 이에 호응해 수하들을 이끌고 성 밖으로 출진해 알키비아데스와 트라실로스에게 도전했다. 싸움의 결과는 키지코스 전투의 완벽한 복사판이었다. 페르시아 장수는 도주했고, 무모하면서도 용감하게 싸움을 걸어온 스파르타 태생 지휘관은 부하들과 함께 장렬하게 옥쇄했다.

 

물 들어오자 노 젓는다고, 알키비아데스는 여세를 몰아 헬레스폰토스 해협 주변 지역 전체를 장악하려 시도했다. 그는 배를 타고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 셀리브리아 점령을 꾀했는데, 의욕이 지나쳤는지 본대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성 안쪽에서 내응하기로 약조한 세력이 약속시간인 자정보다도 이른 시간에 신호용 횃불을 올린 탓에 겨우 50명의 부하만 데리고 셀리브리아 성문 안으로 난입했던 것이다. 그 50명 중에서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중장보병은 고작 서른 명뿐이었고, 나머지 스무 명은 빈약한 무장만 갖춘 경장보병들이었다.

 

셀리브리아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알키비아데스의 선발대를 모조리 몰살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알키비아데스를 살해할 경우에 아테네인들의 그려낼 잔인한 복수극의 희생양이 될 게 분명했다. 그들은 알키비아데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즉석에서 평화협상을 시작했고, 양측의 교섭은 아테네군의 본대가 도착한 직후 완전히 타결되었다.

 

본대와 합류한 알키비아데스가 결심만 했다면 셀리브리아는 이내 잿더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알키비아데스는 선의에 선의로 화답했다. 그는 협정의 정신을 충실히 존중하는 차원에서 병력 가운데 트라키아 출신 군인들을 도시 바깥으로 철수시켰다. 알키비아데스 군영에서 종군하는 트라키아 병사들은 주군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만큼이나 약탈과 호전성으로도 유명한 터였다.

 

알키비아데스가 부지런히 전과를 확대하는 사이에 칼케돈을 포위한 아테네 장수들은 파르나바조스와의 단독강화 협상을 개시했다. 협상은 제국의 장수가 약간의 보상금을 받고서 칼케돈의 지배권을 아테네에 반환하면, 아테네군은 그가 관할하는 페르시아 영토를 더 이상은 침략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도출되었다. 파르나바조스는 이와 더불어 아테네 사절단이 제국의 수도에 가서 페르시아 국왕을 무사히 알현할 수 있도록 그들의 안전통행을 책임지고 보장해야만 했다.

 

파르나바조스는 알키비아데스 또한 협정에 서명할 것을 주장했다. 알키비아데스는 파르나바조스가 먼저 조약에 조인해야만 한다며 버텼는데, 결국은 양자가 동시에 조약의 준수를 서약하는 것으로 회담은 정리되었다.

 

아테네를 배신하고 스파르타로 편을 갈아탄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한 땅은 칼케돈만이 아니었다. 미래에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로 열방에 명성을 날릴 비잔티온 시도 아테네가 반드시 응징해야만 할 살생부에 들어 있었다.

 

알키비아데스는 도시를 약탈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비잔티온 측의 항복선언을 수락했다. 그는 항복식이 끝나기 무섭게 이오니아를 목적지로 하여 바쁘게 출항했다. 허나 이는 트로이 전쟁에서 오디세우스가 사용한 가짜 철병 작전을 모방한 눈속임용 책략이었고, 한밤중이 되자 아테네 함대는 항구로 슬그머니 돌아와 수많은 중장보병들을 기습적으로 신속하게 하선시켰다.

 

알키비아데스는 이번에도 본대에 앞서서 성 안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비잔티온인들 역시 아테네 사람들처럼 호메로스의 대서사시이자 서양의 삼국지격인 「일리아드」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목마를 두고 떠나는 계략에 현혹당해 스스로 성벽을 허문 트로이인들과 달리 맨몸의 무방비상태로 적군을 맞이하지는 않았다.


관련기사
TAG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서울시, 모아타운 4곳 신규 확정…3,570세대 주택공급 본격화 서울시가 노후 저층주거지의 정비를 본격화한다. 시는 10월 16일 제15차 소규모주택정비 통합심의 소위원회를 열어 종로구 구기동, 관악구 난곡동, 동작구 노량진동, 서대문구 홍제동 등 4개 지역의 모아타운 사업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총 3,570세대의 모아주택(임대 852세대 포함)이 새롭게 공급될 전망이다.서울시는 공공참여..
  2. 부평구, 2025년 전통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 유공 시상식에서 국무총리상 수상 부평구(구청장 차준택)가 17일 충청북도 청주시 소재 청주오스코에서 열린 `2025년 전통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 유공` 시상식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고 밝혔다.중소벤처기업부는 매년 전통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에 기여한 우수상인, 시장, 지원단체 및 지방자치단체를 선정해 포상하고 있다.앞서 구는 ▲전통시장 고객지원센터 건립 ▲전통.
  3. 남동구, 전재울근린공원 맨발산책로 정비…이용객 안전·편의 강화 인천시 남동구는 구월동 1501번지 일원 전재울근린공원의 맨발산책로 정비사업을 완료했다고 17일 전했다.전재울근린공원은 맨발산책을 즐기는 주민이 늘어남에 따라 안전시설 확충과 그늘막·벤치 등 휴게시설 설치 요청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이에 남동구는 쾌적하고 안전한 맨발걷기 이용환경 조성을 위해 8천만 원의 예산을 들.
  4. `평택 통합 30주년, 평택 EVERYONE 축제` 개최 평택시(시장 정장선)는 평택시 통합 30주년을 기념해 오는 10월 25일(토)부터 26일(일)까지 이틀간 소사벌레포츠타운에서 `평택 통합 30주년, 평택 EVERYONE 축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이번 축제는 시민과 예술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참여형 축제로 지난 30년간의 성장과 통합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미래 100년을 향한 도약의 뜻을 시민과 함께 나누.
  5. 군포시, `2025 대한민국SNS대상` 최우수상 수상 군포시가 `2025 제15회 대한민국SNS대상` 기초지자체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SNS 소통도시`로 자리매김했다.군포시는 지난 7월 `소셜아이어워드 2025` 인스타그램 부문 최우수상에 이어 이번 대한민국SNS대상에서도 최우수상을 거머쥐며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소셜아이어워드가 개별 채널의 혁신성과 완성도를 평가한다면, .
  6. 9월 취업자 31만 2000명 늘며 19개월 만에 최대폭 증가 9월 취업자 수가 전년 같은 달보다 31만 2000명 늘며 19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내수 회복과 소비쿠폰 등 정책효과로 숙박음식, 예술·여가, 도소매업 중심의 고용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기획재정부는 17일 발표한 고용 동향에서 지난달 취업자 수가 2915만 4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1만 2000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
  7. 9월 가계대출 증가폭 1.1조원…전월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 2025년 9월 한 달 동안 전 금융권 가계대출이 1조1천억 원 증가하는 데 그치며 전월(4조7천억 원)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6·27 부동산 대책 효과가 시차를 두고 본격화하면서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이 줄고, 신용대출 중심의 기타대출이 큰 폭 감소한 영향으로 분석된다.17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