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현실과 동떨어진 ‘반지하 이주 대책’...서울 10채 중 9채는 공공매입 불가
  • 강기중 기자
  • 등록 2023-06-23 12:53:23

기사수정
  • 93%가 ‘준공 20년’ 기준 초과...장마철 침수 피해 되풀이 우려
  • 홍기원 의원, “준공연도 기준이나 지역 제한 등 매입대상 주택 기준 현실화 필요”

장마철 침수 사고를 막기 위해 정부가 반지하 주택을 공공임대로 매입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서울 시내 반지하 빌라 10채 중 9채는 공공 매입 대상이 아예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반지하 가구 모습

거주용 반지하 빌라 대부분이 20여 년 전에 지어져 공공 매입 임대주택 사업의 최소 기준인 ‘준공 20년 이내’를 충족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행정으로 올해 장마철 반지하 세입자 피해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가 2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통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신고된 서울 내 연립·다세대 주택 임대차 계약 9만3196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반지하 빌라 계약은 2264건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와 동작구에서 침수로 반지하 빌라 세입자 4명이 사망한 뒤로도 반지하 전월세는 여전한 셈이다.

 

특히 이 기간 반지하 빌라 계약의 92.9%에 달하는 2104채는 2003년 이전에 지어져 준공 20년이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세입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반지하 빌라 대부분은 지은 지 20년이 넘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하층 주택 매입 대상을 준공 20년 이내 주택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하층 주택 매입 사업 실적이 ‘낙제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LH가 홍기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지하층 주택 매입 사업 추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LH가 해당 사업으로 거둔 실적은 ‘0건’으로 나타났다.

 

LH는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지하층 주택을 매입하겠다는 공고를 냈지만, 단 한 채의 주택도 매입하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장마철 폭우로 서울 관악구와 동작구에서 반지하 세입자 총 4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이후 정부는 반지하 빌라 거주자가 지상 주택으로 이사 가도록 지원하고, 반지하 주택을 없애기 위한 여러 정책을 쏟아냈다.

 

그중에서도 지하층 주택 매입은 반지하 주택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었다.

 

하지만 반지하 주택을 없애기 위한 핵심 사업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LH가 애초부터 매입 대상을 현실과 맞지 않는 기준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LH가 진행하는 매입임대 사업은 지하층 주택이 포함된 기존 빌라를 매입한 뒤 지상은 공공임대로 활용하고, 지하는 공동 창고 등 입주민과 지역민의 공동이용시설로 사용하는 형태다.

 

‘매입임대 업무 처리 지침’상 기존 주택 매입 가능 대상은 준공 15년 이내이지만, 지난해 폭우 이후 국토부가 한시적으로 관련 제한을 해제해 주면서 매입 대상이 준공 20년 이내 주택으로 완화됐다.

 

홍기원 의원

문제는 거주용 반지하 빌라가 2003년 이전에 지어진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 완화된 준공연도 기준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지어지는 빌라는 지상에 필로티 등을 둬서 주차장으로 쓰는 등 지하 거주 공간이 사실상 없다.

 

서울 강동구와 영등포구, 노원구의 경우 지난해 폭우 피해 이후 임대차 계약이 이뤄진 지하층 빌라 100%가 2003년 이전에 건축됐다. 폭우 피해로 사망자가 발생한 동작구와 관악구 역시 지하층 빌라의 임대차 거래 중 준공 20년을 넘은 비율이 각각 92%, 89.2%에 이른다.

 

LH 측은 “향후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려면 열악한 조건의 주택은 매입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다”며 “준공 20년을 넘은 빌라의 경우 ‘신축 매입약정’ 방식으로 매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축 매입약정은 민간 건설사와 LH가 약정을 맺고 기존 반지하 주택을 매입해 철거하고 새로 신축하면 이를 공공임대주택으로 사들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주택 소유자와 LH가 직접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건설사가 중간에 참여해야 해 사업 진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대책 발표 이후 신축 매입약정 방식으로 반지하층이 있는 빌라를 사들인 사례 역시 ‘0건’인 상황이다.

 

최근 반지하 주택 매입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LH는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우선 지하층 주택 매입 사업 대상 지역을 기존 경기와 인천에서 서울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민간 건설사를 끼지 않고 공공이 직접 매입한 뒤 신축하거나 리모델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준공연도 제한 없이 지하층이 포함된 주택을 공공이 매입하고 철거한 뒤 신축해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해도 사업 진척이 어려울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존 주택 매입 사업의 준공 20년 이내 기준은 여전한 데다 이 기준을 통과하더라도 넘어야 할 벽이 높기 때문이다.

 

일례로 LH는 가구 내 보일러실이 없거나 세탁기 공간 확보가 어려운 주택일 경우 매입 대상에서 제외한다. ‘근생 빌라’(근린생활시설이 포함된 주택)나 불법 건축물은 매입 대상이 아니다.

 

실제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준공연도 기준을 따로 두지 않고 있지만, 다른 요건 충족이 쉽지 않아 반지하 주택 매입 실적이 이달 5일 기준 98채로 올해 목표한 3450채의 2.8%에 그친다.

 

새로 추가되는 공공 리모델링 방식 역시 빌라 한 동을 통째로 매입하려면 소유주 절반 이상의 동의가 필요해 사업이 원활히 진행되기 어려울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매입 비용, 신축 비용 등을 고려하면 기존 주택 매입 대비 배 이상 예산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몇 번이고 사업 공고를 다시 내도 ‘반지하 거주자들의 반지하 탈출’을 돕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제도를 개선해도 또 다른 벽이 많은 탓에 지하층 주택 매입을 통한 거주자 이주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현실적으로는 물막이판(차수판) 등 침수 방지 시설 설치를 서두르는 것이 올여름 또 다른 폭우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이라고 했다.

 

홍기원 의원은 “반지하 대책이 말뿐인 대책이 되지 않으려면 반지하 건물에 한해서라도 하루빨리 준공연도 기준이나 지역 제한 등 매입 대상 주택 기준을 현실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서초구
국민신문고
HOT ISSUE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57대 1` 경쟁 뚫은 80팀, 한강서 멍때리기 승부 펼친다 서울시는 11일 오후 반포한강공원 잠수교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80팀 128명이 참가하는 ‘2025 한강 멍때리기 대회’를 열고, 시민투표와 심박수 측정을 통해 가장 ‘잘 멍때리는’ 시민을 선발한다고 밝혔다.‘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경쟁하는 특별한 대회가 오는 주말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다. 참가자..
  2. 트랙터 집회에 서울시 “교통혼잡 우려”… 전농 “경찰이 길 가로막아” 서울시는 10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주최한 트랙터 집회로 시민 불편이 커지고 있다며 경찰에 즉각적인 대응을 요청했으며, 전농은 경찰이 집회를 방해하고 있다며 이를 헌법적 권리 침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10일 오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서울 시내에서 주최한 트랙터 집회를 두고, 서울시와 전농 간에 강한 입장 차가 드러나고 있..
  3. 국토부 "창원NC파크 재개장, 조속 안전조치 완료 시 가능... 타 구장 점검은 사용제한 의미 아냐" 국토교통부가 창원마산야구장(NC파크) 외벽 부착물 낙하 사고와 관련해 정밀안전진단이 재개장의 필수 조건이 아니며, 다른 프로야구장 점검도 사용 제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29일 창원NC파크에서 발생한 외벽 부착물(루버) 낙하 사고로 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창원시와 창원시설공단에...
  4. LH, 청년센터 근로자 대상 ‘찾아가는 주거상담소’ 첫 운영 LH는 8일 서울광역청년센터에서 전국 청년센터 근로자를 대상으로 청년 주거정책 상담 역량을 높이기 위한 ‘찾아가는 청년 주거상담소(근로자편)’ 프로그램을 처음 시행했다고 밝혔다.는 8일 서울 용산구 서울광역청년센터에서 ‘찾아가는 청년 주거상담소(근로자편)’를 시행했다고 밝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청년 주..
  5. 경기도, 반려동물 진료 위해 동물의료기관 3곳과 손잡아 경기도는 ‘반려동물의 날’을 맞아 9일 반려마루 여주에서 도내 주요 동물의료기관 3곳과 보호동물 및 사회봉사견의 진료와 입양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이번 협약은 도와 넬동물의료재단, 본동물의료센터, 해마루반려동물의료재단 간의 상호 협력을 바탕으로 보호동물 및 사회봉사견의 진료 지원, 입양 연계,...
  6. 민주당 “국민의힘 후보 교체는 새벽 쿠데타… 내란 본당 자처” 더불어민주당은 10일 국민의힘이 김문수 후보를 전격 교체한 데 대해 “민주주의를 파괴한 내란 쿠데타”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국민의힘은 더 이상 정당이라 부를 수 없다”고 주장했다.더불어민주당 중앙선대위 신속대응단은 10일 오전 성명을 발표하고, 국민의힘이 공식 경선을 통해 선출된 김문수 후보를 자정 이후 비.
  7.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자격 취소… 권영세 “읍참마속의 결단”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후보 단일화 실패에 따라 김문수 후보의 자격을 취소하고 새로운 후보를 지명하기로 했다고 밝히며, “어떤 결과가 나오든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다”고 강조했다.대통령 선거 공식 후보 등록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