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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⑤, 과거로 현재의 모순과 과오를 숨기지 마라”
  • 공희준 편집위원
  • 등록 2021-05-21 20: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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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정 정권의 지지층만을 바라보는 외교는 이제 사라져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인에게는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동시에 요구된다는 유명한 명제를 생전에 남겼다. 나라 안팎의 정세를 두루 균형 있게 조망하며 정치를 해온 DJ의 남다른 안목과 통찰력을 반영하는 명제였다.

김 전 대통령의 테제를 필자가 임의로 세분하자면 국내정치는 서생의 문제의식이 주도해야 바람직한 영역이다. 국제정치, 즉 외교는 상인의 현실감각이 강력하게 관철되어야만 하는 분야이다. 김영선 대표는 현재의 대한민국호의 국제관계에서는 서생의 문제의식도 상인의 현실감각도 엿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여당과 야당 모두가 오직 얄팍한 정치공학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한일 관계의 정상화가 요구되는 이유는


김영선 대표는 중국의 굴기를 견뎌내려면 일본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사진 김한주 기자)

김영선(이하 김) : 중국의 굴기가 진짜로 두려우면 일본과 손잡으면 됩니다.

 

공희준(이하 공) : 방금 하신 말씀은 ‘토착왜구’ 프레임에 딱 걸리기 좋은 논리입니다.

 

김 : (예상한 반론이라는 듯)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력을 합치면 설령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발을 뺀다고 해도 중국의 점증하는 압력에 충분히 맞설 수가 있습니다.

 

공 : 지금의 시국에서는 일본과 손잡자는 주장이 제기되자마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같은 사람들이 지체 없이 일제히 「죽창가」 부르며 궐기할 확률이 높습니다.

 

김 : 일본과 협력하자는 얘기가 정치적 역풍을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점점 더 강해지는 입김을 상쇄시키기에는 한국과 일본의 연대에 필적하는 다른 합리적 대안을 현실적으로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합리적 대안을 거부한 채 그냥 목청만 높이고 있어요. 그러니 중국의 자장 안으로 더욱더 깊숙이 빨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과의 쓰라린 과거의 기억은 연신 되살리면서도 당장 눈앞에 보이는 중국이란 폭탄은 누가 우리 대신 치워주겠지 하는 무책임한 자세로 마냥 방치하고만 있습니다. 현재 발등에 떨어진 불은 외면하고서 과거에만 초점을 맞춰왔어요. 그게 특정 정당과 특정 정파의 단기적인 정략적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공 : 과거의 남의 잘못으로 현재의 나의 과오를 감추는 짓은 선전선동과 여론조작의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요.

 

김 :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였지만, 중국은 일본과 중일전쟁이라는 장기간의 유혈 전쟁을 치렀습니다.

 

공 : 중국군과 일본군이 1937년의 여름과 가을에 걸쳐 벌인 상하이 전투가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전에는 인류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가전이었다고 합니다.

 

김 : 중국은 일본을 상대로 국제사회에서 전승국 지위를 쟁취한 나라입니다.

 

공 : 우리나라 현대사가 크게 꼬이기 시작한 출발점이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에 교전당사국으로 전승국 자격을 얻지 못한 데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식민지로 분류됐어요.

 

김 : 중국은 명실상부한 전승국임에도 일본에게 전후에 배상금을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중국의 자존심이었습니다. 일본이 중국의 무고한 양민들을 수없이 무참히 살육한 곳은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뿐만이 아닙니다. 화북 지역인 천진에서도 천인공노할 대규모 학살이 자행됐습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왜 그렇게 못된 짓만 골라했느냐? 중국에 대한 뿌리 깊은 열등감의 발로 탓이었습니다. 그 열등감을 달래기 위해 중국을 갈아엎다시피 했습니다.

 

중국이 20세기 후반에 경제적으로 낙후되면서 일본을 향해 잠깐 열등감을 느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열등감은 중국이 고도성장을 거듭하며 이내 잦아들었습니다. 요즘에는 중국 내에서 일본을 대놓고 무시하는 경향마저 도드라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국은 겉으로나마 일본을 존중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즈니스 세계에서 보여주는 일본인들의 행동방식이 원체 세련되고 노련하거든요.

 

공 : 우리는 일본인 하면 뻐드렁니 돋아난 못난 얼굴에 게다짝 시끄럽게 찍찍 끌고 다니는 인상만을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김 :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을 상대로 돈을 벌려는 목적은 매한가지입니다. 문제는 우리는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중국인들의 호주머니를 노린다는 점이에요.

 

공 : 김흥국 정신 계승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마구 들이대는 형국이네요.

 

김 : 일본과의 전면적 협력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민정서상 불가능하다면 우리가 갈 길이야 빤하죠.

 

공 : 현재의 평균적 한국인들이 대외관계에 품은 감정의 기조는 일본도 싫고, 중국도 싫고, 북한도 싫고, 미국도 싫은, 그저 전부 다 밥맛이라는 생각입니다.

 

김 : 그게 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얄팍한 농간이 작용한 탓입니다. 좌파는 반일 프레임으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우파는 반중 프레임으로 추종자들을 규합합니다.

 

공 :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 모두 기회가 닿을 때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들을 갈라치기 해왔으니까요.

 

한국은 개방하고 무역해야 번영한다

 

김영선 대표는 중국은 일본과 전쟁을 치렀음에도 실사구시의 정신에 입각해 일본과의 관계를 관리해왔다고 지적했다. 이미지는 중일전쟁 당시의 국부군 병사들의 분투를 묘사한 중국 영화 「800」의 포스터

김 : 한국은 일본과의 무역이 없으면, 중국과 교역을 하지 않으면 그 즉시 국민들이 생고생을 하게 되는 개방된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입니다. 수출이 살길이고, 수입이 생명선입니다. (약간 격앙된 어조로) 외국과의 밀접한 경제적 유대관계 없이는 먹고살기가 불가능한 나라에서 이 나라도 끔찍하고, 저 나라도 혐오스러우면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겁니까? 다른 나라와 교류와 협조를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벅찬 국가에서 느닷없이 역사전쟁을 하겠다며 정부여당이 사방으로 문을 다 걸어 잠그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앞으로 뭘 먹고 삽니까?

 

지금처럼 폐쇄주의와 배타주의를 맹목적으로 고집하고 조장하면 머잖아 국가적 재앙을 초래하기 마련입니다. 과거사는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과거사를 청산한다는 구실로 현재를 직시하지 못하게끔 국민들의 눈을 가려서는 안 됩니다.

 

공 : 일반 대중이 과거로 관심을 돌려야 집권세력이 지금 이 순간 더 악착같이 부정부패를 저지를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중국이 한국을 지목해 과거사를 규명ㆍ정리하겠다고 나서면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 장군부터 중국 공산당이 설치한 역사의 법정에 서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장군께서 살수에서 수십만 수나라 병사들을 물고기 밥으로 만드셨으니.

 

김 : 알고 보면 다들 우리의 조상들인 고구려와 신라와 백제는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세 나라 모두를 우리의 조상들이 세운 나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공 : 김유신이 살해한 백제 병사들도 한국인의 조상이고, 계백 장군에게 죽임을 당한 신라의 군사들도 한국인의 조상입니다. 후삼국 시대에 궁예와 견훤과 왕건이 겨룬 통일전쟁에서 무수하게 죽어나간 사람들도 현대 한국인의 조상들이고요.

 

김 : 고조선의 강역은 한반도 남쪽에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면 현재의 남한은 단군 왕검의 후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군의 후예로서 북방민족의 일원임을 자부하고 있습니다. 근거가 뭐냐? 고구려의 주몽에게 쫓겨난 소서노가 두 아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위례성을 도읍으로 삼아 백제왕국를 건국한 까닭에서입니다.

 

공 : 북방민족의 일원으로서의 우리민족의 남방한계선은 제가 거주하고 있는 잠실까지네요. 때마침 제가 월계동에서 잠실로 이사 올 때 소서노에 잠깐 빙의했었습니다. (웃음)

 

김 :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역사전쟁에만 몰입하다 보면 제가 방금 언급한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들처럼 매우 당혹스럽고 난처한 상황에 우리나라가 직면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나라꼴이 몹시 우스워질 위험성이 있어요.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역사전쟁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무모하고 조급하게 열어젖혔어요.

 

공 : 마지막에 희망이 나온다고 믿었던 모양이겠죠. 한데 작금에 돌아가는 분위기는 문재인 정권이 열어젖힌 판도라의 상자에서 희망 대신에 부메랑이 튀어나올 기세입니다.

 

김 : 외교는 좋고 싫고의 감성적 문제가 아닙니다.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의 냉정한 실리와 실용의 이성적 영역입니다.

 

공 : 중국과 장사 잘하고, 일본과 협력 원활하면 나라의 미래가 저절로 밝아지겠네요.

 

김 : 이제는 그조차 쉽지가 않게 됐습니다. 우리는 중국과 장사를 잘하고 싶은데, 중국 측은 한국이 자꾸만 미국 편을 든다며 얼굴에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저는 ‘안보는 미국’이라고 말할 때 북한만을 머릿속에 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군이 한반도에서 실제로 철수한다고 가정해보세요. 그럼 북한이 구태여 남침을 감행하지 않아도 한국이 미군의 공백을 메우느라 급격히 불어난 국방비로 말미암아 나라가 거덜 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큰돈을 들여서 한 일이 이제 겨우 차세대 국산전투기 하나 독자개발한 일입니다.

 

공 : 제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중국과 일본의 누리꾼들은 며칠 전에 문재인 대통령의 참석 아래 대대적으로 출고식을 거행한 KF-X의 시제기를 미국의 F-22 전투기의 복제품이라고 떠들고 있더라고요. 두 기종의 외형이 대단히 흡사하다면서요.

 

김 : 우리가 전투기를 자체적으로 개발할 자금과 시간을 확보한 것도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미국의 요구를 군말 없이 수용해야만 한다는 사대주의적 입장은 아닙니다. 박근혜 정권이 미군이 경상북도 성주에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할 수 있도록 동의해준 결정은 지나치게 성급하고 졸속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중국이 잘하는 일이 있습니다. 망망대해 위에다가 콘크리트 부어 인공섬 건설하는 작업입니다.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다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도 시멘트로 조성된 인공섬입니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성과들 가운데 한 가지가 세계 최고 수준의 높은 토목기술입니다. 우리도 바다에 인공으로 섬 하나 만든 다음 그 위에 사드를 가져다놓을 수도 있었잖아요. 중국의 기분을 덜 상하게 할 방법을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든 궁리해냈어야죠.

 

국익을 위해 융통성과 유연성을 발휘했어야 마땅하건만 전임 박근혜 정부는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라고 해서 박근혜 정부보다 나은 구석이 별로 보이지를 않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된 국제정세가 좀처럼 풀릴 기미가 없거든요. 어떤 정권이든 외교전선에 임할 경우에는 자신들의 극렬 지지층만을 의식한 편협한 대중영합주의에 절대 함몰돼서는 안 됩니다.

 

공 : 황교안 전 국무총리로 대표되는 태극기부대도,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부류의 조국기부대도 대한민국의 장기적 발전과 지속가능한 국익에는 백해무익한 존재들일 수밖에 없겠네요.

 

김 : 저는 사업하는 사람이라 국내정치와 관련해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제 의견을 말씀드리기는 좀 거시기합니다.

 

공 : 그래도 근래 보기 드문 화끈한 직설화법으로 시원시원하게 답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김 : 제가 오늘 너무 폭주한 것 같아서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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